2019. 11. 11. 00:50

연애편지에 농담한번 잘못했다가 학교에서 쫓겨나 군대간 썰

 

연애편지에 농담한번 잘못했다가 학교에서 쫓겨나 군대간 썰


한줄로 요약하자면 그렇다. 연애편지에 농담 한 번 잘못썼다가 학교에서 쫓겨나 군대 간 썰. 상당히 흥미를 돋구게 만드는 플롯이다. 이 플롯은 당시 시대적인 배경인 사회주의와 맞물려 빠르게 진행된다. 한마디로 주인공인 루드비크가 자신 혼자서는 어쩔 수 없는 환경적인 요인에 휘말리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이야기다.

이야기가 가진 분위기 자체는 그가 농담 이후에 쓰게 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보다 훨씬 '가볍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는 만연체를 사용하며 직접 작가가 묘사에 개입하기도 하며 이야기 자체보다는 이야기를 설명하는 것에 많은 힘을 들이고 이야기 자체의 매력보다는-이야기 자체로써도 이미 훌륭하지만 굳이 비교하자면-그것을 풀어내는 것들에 더욱 초점이 맞춰져 있다. 밀란 쿤데라 그의 피아니스트 아버지 밑에서 자라서 인지 그 영향을 받은 베토벤의 일화나, 키치에 대한 그의 서술 등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물론 농담에서도 특유의 밀란 쿤데라의 음악적인 지식이나 서술이 들어나 있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다만 좀더 이야기와 심리묘사에 더 치중해 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보다는 훨씬 읽기가 편했다. 밀란 쿤데라의 작품은 이번 '농담'까지 총 두 편을 읽었는데, 다시 밀란 쿤데라를 찾은 이유는 밀란 쿤데라의 해박하고 다양한 지식들과 그 지식들로 하여금 사람들의 심리를 관통하는 통찰을 서술하는 것에 있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는 특히나 그것이 도드라져있었고 문장 하나, 한 페이지를 읽어 내려갈 때마다 곱씹으며 좀 처럼 책장을 넘기기가 힘들었던 경험이 있었다. 하지만 그때 곱씹고 공상하며 얻은 생각들이 굉장히 내게 많은 내적 성장을 가져다 주었고 또다시 그런 경험을 기대하며 이번에 '농담'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왠걸 뚜껑을 열어보니 인물들을 중심으로 다른 배경 설명들을 소거하고 이야기들을 나열하기 시작한다. 어느새 금방 페이지가 넘어가기 시작하고, 비교적 쉽게 마지막까지 끝마칠 수 있었다.

혹시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과 '농담' 둘 중에 무엇을 읽을 지 고민이 된다면 주저 없이 이 '농담'을 먼저 읽으라 권하고 싶다. 출간한 시기적으로도 그렇고 어느정도 밀란 쿤데라의 배경을 익히기에는 '농담'만한 소설이 없기 때문이다.

루드비크는 밀란 쿤데라의 페르소나?


여러가지 가면들 중에 진짜는 과연?

그도 그럴 것이 이 소설, 농담은 사실 단순한 픽션만을 담고 있지는 않다. 밀란 쿤데라, 그의 아버지의 이름은 루드빅 쿤데라이다. 주인공의 이름인 루드비크도 아마 그의 아버지의 이름과 아예 연관성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밀란 쿤데라는 프라하 카렐 대학교 예술학부에서 문학과 미학, 영화학을 배웠으나 그는 1950년에 정치적인 이유로 학업을 중단 당했다. '반공산당 활동'이라는 죄목으로 공산당에서 추방당했고 이 사건은 '농담'에서 루드비크가 대학교에서 마르케타에게 편지에 넣은 농담 덕분에 반공산적인 행위로 찍혀 추방당하는 이야기와 전혀 무관하지 않다.

이 작품은 그의 학창 시절에 대한 회고이기도 하며 후회이기도 하고, 변명이기도 하며, 마지막 즈음에는 그의 반성 또한 넌지시 살펴볼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루드비크는 밀란 쿤데라의 페르소나임과 동시에 밀란 쿤데라의 '다른 얼굴'인 셈이다.

가면을 쓰기도 했고 더 나이가 든 척해 보기도 하고, 모든 것들과 거리를 두는 척, 높은 곳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는 척했으며, 내 살갗 아래에는 눈에 보이지도 않고 방탄도 되는 두 번째 살갗이 있는 듯 굴었다. 농담이 그런 거리를 분명하게 표현해 주는 것 같았다.(옳은 생각이기도 하다.) 그런데 내가 평소에도 농담하기를 좋아하긴 했지만, 마르케타하고는 특별히 아주 열심히, 인위적으로 꾸며서 농담을 하게 되곤 했다. 그러나 실제로 나는 누구였던가? 다시 한 번 이렇게 말할 수 밖에 없다. 나는 여러 얼굴을 가진 사람이었다. 여러 모임에서 나는 진지하고 열성적이며 확신에 찬 사람이었고, 친구들과 같이 있을 때는 제멋대로에다 짓궃었으며, 마르케타하고는 온갖 노력을 다하여 냉소적이고 궤변적이었다. 그리고 혼자일 때면,(마르케타를 생각할 때면) 나는 겸허했고 중학생처럼 마음이 설레었다. 이 마지막 얼굴이 진짜였을까? 아니다. 모든 것이 진짜였다. 위선자들처럼 내게 진짜 얼굴 하나와 가짜 얼굴 하나가 있었던 것이 아니다. 나는 젊었고, 내가 누구인지 누가 되고 싶은지 자신도 몰랐기 때문에 여러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그렇다고 해서 이 모든 얼굴들 사이에 존재하는 부조화가 내게 두려움을 주지 않았떤 것은 아니다. 나는 그중 어느 것에도 꼭 들어맞질 않았고, 그저 그 얼굴들 뒤를 맹목적으로 이리저리 해매 다니고 있었다.) - 56페이지

루드비크에 대해서 가장 잘 설명해주는 단락이며 그의 다른 얼굴이 빚어낸 '농담'의 의미에 대한 고찰도 담겨져 있다. 실제로 나는 어떤 사람인가라고 스스로 되물었을 때, 쉽게 대답할 수 있는 이는 극히 드물 것이다. 친구에게 말하 듯이 부모에게 할 수 없듯이, 나는 가정에서 어떤 인물이며, 친구에게는 또 다른 모습이고 학교, 회사에서는 또 각자 다른 얼굴들을 가지고 있다.

사춘기라는 것은, 어쩌면 이 얼굴들 사이의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강한 척 담대한 척 자신을 포장해서 내가 아닌 모습을 연기하는 것 또한 하나의 거대한 세상을 마주한 작은 우리들에게 대처하는 하나의 방식일 뿐이다.

이에 대해 밀란 쿤데라는 이렇게 이야기 한다.

젊은이들이 연기를 하는 것은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삶은, 아직 미완인 그들을, 그들이 다 만들어진 사람으로 행동하길 요구하는 완성된 세상 속에 턱 세워 놓는다. 그러니 그들은 허겁지겁 이런저런 형식과 모델 들, 당시 유행하는 것, 자신들에게 맞는 것, 마음에 드는 것 등을 자기 것으로 삼는다. 그리고 연기를 한다. -151페이지

화끈하면서도 찝찝한 복수극


이 이야기가 재밌는 이유는 단순히 밀란 쿤데라의 페르소나가 비슷한 이유로 대학에서 쫓겨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가 군대에 들어가게 되고 겪는 상사와의 마찰, 외박에서의 썸 등, 내가 군대에 있을 때가 오버랩되면서 이 세상 군대는 어느 나라건 간에 다 똑같은 군대구나라는 것을 느꼈다.

또한 아침 드라마의 필수인 자신을 대학에서 내몰아 나락으로 빠트렸던 제마네크에게 복수하기 위해 그의 와이프와의 불륜.

백미는 단연 정사가 끝나고나서 루드비크가 모든 것이 덧없다는 듯이 독백하는 것이 마치 현자타임을 떠올리게 만들어서 웃기기도 하고 애처롭기도 했다.

그는 모든 복수를 끝마쳤음에도 불구하고 호탕하게 웃지 않았다. 오랜만에 만난 제마네크는 바뀌었고 루드비크는 여전히 그를 증오한다. 이 증오는 멈출 수 없었다. 그에 대비되며 함께 보여지는 인물들이 바로 루치에와 코스트카의 이야기이다.

이 에피소드의 배치를 뒤 편에 넣은 것은 밀란 쿤데라의 이야기를 푸는 센스가 돋보이는 부분이기도 하다. 루치에는 루드비크처럼 사회적인 기류와 그녀가 어쩔 수 없는 것들에 휘말려 큰 상처를 입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택한 것은 복수가 아니라 살아가는 것이었고 루드비크처럼 야비하게 행동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 그녀를 공감하면서도 그는 그렇게 되지 못한다.

그는 대체 어떻게 했어야 했을까. 조금 다르게 그녀를 받아들였다면 루치에와 루드비크는 미래에 함께할 수 있었을까. 제마네크와 루드비크는 화해할 수 있었을까.

가볍게 던진 농담으로 거리두기에 실패한 루드비크가 사람을 대할 때 어떤 얼굴을 해야하는 지 고민하는 이 일련의 과정들이 바로 '농담'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도서

별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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