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2. 9. 15:13

빅 브라더가 모든 것을 통제하는 미래

항상 디스토피아 세계관을 언급하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대표적인 소설이 바로 이 1984이다. 조지 오웰은 '동물농장'에서도 보여주었듯 전체주의라는 거대한 지배 시스템에 대한 냉혹한 풍자와 비판이 아주 날카롭게 서려있는 작품들을 많이 내놓았다. 동물농장 이후에 나온 작품인 1984 역시 말하고자 하는 논조자체는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1984는 디스토피아의 색이 짙다는 점이랑 다소 절망적인 분위기로 극이 흘러간다는 점이 다소 충격적으로 다가온다는 점이 내게는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경고성의 메세지를 준다는 점에서는 탁월한 선택일 수도 있는 것이 솔직히 이런 결말로 나아갈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탓에 더 기억에 남고 경계해야 한다는 점을 확실히 인식에 박혔다.

이야기의 시작은 윈스턴의 관점에서 시작한다. 속으로는 반체제주의자 이지만 '빅 브라더'에 순응하며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집에서는 몰래 금지된 일기를 감시망을 피해서 적어내려가며 남몰래 반항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1984의 시대는 '빅 브라더'에 의한 전체통치 계급주의 사회이다. 빅 브라더에 의한 삼엄한 통치와 감청, 감시망 속에서 사람들의 의지와 자유는 억압되어 있고 정해진 일들만 하도록 강요받고 있다. 마치 사회라는 거대한 기계에 부속품처럼 튀거나 닳면 다른 톱니바퀴로 갈아끼우 듯이 사회에서 격리되고 제거된다.

그런 윈스턴에게 어느 날 줄리아라는 여성에게서 몰래 건네받은 '당신을 사랑한다'는 쪽지로 부터 모든 사건은 시작된다.

제 마음대로 사랑도 금지된 시대, 섹스 조차 감정을 제외한 오직 자식을 '생산'하기 위한 도구로 빅 브라더에 의해 규정된 시대에서 그들의 사랑의 끝은 과연 종말일까.

신어가 보여준 언어의 강제성


"내가 쓰는 언어의 한계가 나의 세상의 한계다."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이 말했다. 언어를 제한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사고를 제한한다는 것과 같고, 언어를 조작할 수 있다는 것은 언제든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생각을 조작할 수 있다는 것과 같다.

신어는 그러한 이념에 의해 철저희 만들어진 언어이다. 신어는 오세아니아의 공용어로서 영국 사회주의의 이념적인 필요성에 부응하기 위해 고안되었다.

영사의 신봉자들에게 사회주의 이념에 대한 표현 수단을 제공하고 다른 사상을 갖지 못하도록 강제하는 것에 그 목적이 있다.

예를 들면 신어의 'free'. 자유라는 단어는, 'politicall free'(정치적인 자유)나 'intellectually free'(지적인 자유)와 같은 정치적, 지적 자유라는 표현으로는 사용될 수 없다. 사회주의 안에서 정치적 자유나 지적인 자유는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윈스턴은 당과 관련된 매체보도를 허위로 조작하고 재배포하는 일을 담당하는 당원이다. 윈스턴이 하는 일은 시사하는 바가 많다. 바로 과거를 바꾸고 당의 정책에 따라 사람들을 선동하는 일을 쉽게하고 그 보도매체에서 사용하는 것이 바로 신어이기 때문이다.

없는 인물을 만들어내서 당의 명분을 획득하고 과거를 조작해서 지금의 정당성을 얻는다. 가장 두려운 것은 모든 것에 빅 브라더의 손길이 안 닿는 곳이 없어서 어떤 것이 조작된 것인지 어떤 것이 진실인지 모든 것이 불분명해진다는 사실이다.

가령 전쟁이라는 배경은 실제로 그 시대에 존재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소설 속에 전쟁은 빅 브라더가 존재함으로서 실제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당의 선전용으로 전쟁을 활용하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실제로 전쟁이 묘사된 장면은 거리 곳곳에 텔레스크린으로 배포되는 찌라시 선동 화면일 뿐 직접적으로 전쟁의 경험을 1인칭으로 묘사하는 장면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전쟁으로 인하여 점점 줄어드는 보급품에 대한 정당성을 얻고, 전쟁으로 인하여 내부적으로 똘똘뭉치게 만드는 당의 선전으로 전쟁이 활용되는 것이다.

이미 외부의 적을 만들어 내부를 규합하는 행위는 실제로 공산국가나 파시즘 뿐만이 아니라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 전국을 통일 후 여기저기서 터져나오는 무사들의 불만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하나의 여론으로 합치기 위해서 임진왜란을 일으킨 사실은 너무나도 유명하다.

1984와 전혀 다르지 않은 오늘


앞서 이야기한 신어와 1984의 빅 브라더가 당 선전에 이용한 여러 심리적인 기술들이나 정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행위들은 단순 소설이라 치부하기에는 그냥 웃어넘기기 힘든 것들이 많다.

예를들면 작금의 북한의 태도나 사태들은 이미 우리들의 귀에 익숙하게 박혀 당연하게 여겨져있음에 살짝 차치하더라도 중국의 마오쩌둥 사상에 젖어 홍위병을 일으켜 과거를 불사르고 책과 문화 유산들을 없애버리는 행위들. 당의 사상에 방해가 되는 정적과 과거, 부르주아적인 것의 모든 것들을 파괴하고 폭력을 행사한다는 것은 빅 브라더가 행하는 일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그 결과 어떻게 됐는가, 문화대혁명에 의해 중국의 문명은 한 세기를 역행했고 공산당 조차 마오쩌둥의 극좌적인 오류라며 비판했다.

가장 최근에 벌어진 사건에서도 1984의 미래를 엿볼 수 있다. 위 사진은 텐센트가 운영하는 웹페이지에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현황을 다룬 유행병 상황판에 사망자가 2만 4,589명으로 잠깐 표시되었다가 다시 수정된 사건이다. 이는 중국 정부의 발표보다 약 90배 이상 높은 수치이고 중국 정부의 요청(이라고 쓰고 협박이라고 읽는다)에 의해 다시 수정된 것이 아니냐는 해외 언론들의 추측이다.

이뿐만이 아니라 맨 처음 우한에서 일어난 확진자를 감추기 위해서 일부로 확진자의 카운트를 안새고 죽게 내버려두는 것 뿐만이 아니라 중국 정부의 치부를 가리기 위해서 온갖 수를 동원해서 이를 막고 있다가 결국 이 고름이 번지고 터져서 지금의 우한 사태가 벌어지게 된 것이다.

살짝 여담일 수도 있지만 빅 데이터와 얼굴인식 분야에서 가장 발전되었다고 손꼽히는 나라는 미국,한국,일본도 아니고 바로 중국이다. 공산주의인 중국은 사람들의 얼굴을 인식해서 저장하고 바로 사상범과 공안에 의해 관리받을 수 있도록 통제목적으로 추진되고 개발된 정부사업들이 많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마치 빅브라더의 CCTV인 텔레스코프와 마이크로폰이 떠오르게 만드는 너무나 날카롭게 폐부를 찌르는 듯한 조지 오웰의 통찰력이다.

인터넷에서는 게임에서 중국인들이 트롤하면 채팅창에 중국어로 번역된 '그럼 홍콩 시위를 응원한다고 말했던건 뭐야?', '티베트인들이 어떻게 공산당에 탄압받았는지 알고싶다고 한글로 물어보았구나?','천안문 관련 활동은 잘 되어가고 있어.''시진핑의 독재에 반대한다는 내용의 한글로 쓴 연설 잘 들었어. 이제는 행동으로 옮길 때야.'와 같은 말을 써서 보내면 쥐도 새도 모르게 공안에서 잡아간다는 블랙 유머가 떠돌고 있다.

1984의 조지 오웰의 경고는 이미 경고가 아니라 현실인 셈이다.

전체를 위해 기본 욕구는 제한될 수 있는가?


1984를 읽으며 우리가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다. 당연 이 질문을 듣자마자 우리는 이런 끔찍한 생각이 어디있냐는 듯이 제한될 수 없다고 당장에라도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공리주의라는 것은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나오듯이, 이 질문을 바꿔서 구명보트에 표류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 사람의 희생으로 인육을 먹고 나머지가 살아날 것인지 아니면 모두가 희생될 것인지를 고민하게 된다면.

다시 묻는다. 전체를 위해 개인의 살고자하는 욕구를 제한할 수 있을까? 과연 그들을 살인죄로 재판을 받게할 수 있을가?

현대에 들어서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베스트 셀러에 오르고 다시 벤담의 공리주의가 논의된다는 점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지금에서야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라는 이념이 많이 퇴색되고 사라졌다 하더라도 우리는 끊임없이 1984에서 얻은 교훈을 되새기고 고민해야한다는 점이다.

당연히 전체를 위해 기본 욕구는 제한될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이 결국 모두가 행복한 결과로 이끄는 정답은 아닐 것이다. 기본의 욕구는 보장하지만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방안의 정답 또한 절대로 민주주의가 아니 듯이 새로운 이념에 대한 탐구와 경계는 절대 멈추지 말아야 할 것이다.

  도서

별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