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4. 20. 19:26

그 시절 순수함과 찌질함의 공존

호밀밭의 파수꾼이 가진 영향력


호밀밭의 파수꾼은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의 자전적인 성향이 담긴 성장 소설이다. 주인공인 홀든 콜필드의 시점으로 펼쳐지는 이 성장 소설은, 구어체와 당시 10대들이 즐겨 쓰던 비속어와 은어들을 사용해 친근감과 함께 당시 청소년들에게 많은 공감과 지지를 불러일으킨 소설이다.

이 소설은 50년대 초에 첫 출판 되었다. 그 당시 미국은 2차 세계대전과 경제 대공황 이후에 무너져 내린 것들을 재건하는 과정에서 호황기를 맞으며 사람들은 점점 안정을 되찾아가면서 동시에 보수적으로 변해갔다.

그렇게 변한 사회에서 이 책의 등장은 큰 파란을 불러일으켰고 실제로 당시 미국에 여러 학교에서 금서로 지정되어 있고 심지어 아직도 금서로 지정되어있는 학교가 있을 정도로 이 책의 영향력과 파급력은 무시 못 할 정도이다.

그렇다고 청소년기 학생들에게만 영향을 미쳤냐고 한다면 그것은 또 아니다. 케네디를 죽였다고 알려진 리 하비 오스월드가 저격했던 장소에서 '호밀밭의 파수꾼'이 나왔고

존 레논의 암살범 마크 채프먼이 암살 직후 "모든 사람이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어야 한다."고 말하며 그가 고교 시절 부터 이 책을 읽어온 애독자임을 밝혔다.

조금 과장해서 표현하자면 암살범들의 바이블이라고는 오명까지 생길 정도로 이 책의 영향력은 비단 학생들뿐만이 아니다.

이 책의 어떤 매력이 그들을 사로잡을 수 있었을까?

 

홀든 콜필드의 질풍노도 시기


변호사 아버지를 두고 할리우드에 활동 중인 시나리오 작가 형을 둔 부유층 자제인 홀든 콜필드는 세상은 아무도 자신을 이해해주지 않는다면서 스스로를 세상과 격리한다.

자신을 아무도 모르는 북부로 올라가 주유소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아무하고도 말을 하고 싶지 않다거나, 숲속 오두막집으로 훌쩍 떠나버리고 싶다든지 하는 고독을 원하면서도 클럽에 가고 택시 기사나 여자들에게 말을 먼저 건네기도 하는 아이러니함을 가지고 있다.

변덕이나 허세, 그러면서도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이해하기 힘든 감수성이 홀든 콜필드를 대표하는 성격이며 질풍노도의 시기를 가진 청소년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성격이다.

내 경우에도 학교라는 억압된 환경 속에서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못 하게 되므로 인해서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결국 학교를 벗어나서도 제자리라는 생각이 들어서 너무 힘들었던 경험이 있었지만, 정말로 학교를 그만두거나 다른 학교로 옮기고 싶던 열망이 넘쳤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 점에서 학교와 학교에 있는 사람들이 마음에 안 들어서 떠나기로 한 홀든 콜필드의 심정은 결코 일탈이나 한낱 치기 어리고 섣부른 판단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마치 거울을 보듯이 드러난 민낯에 얼굴이 화끈해져 온다.

 

홀든 콜필드가 가진 낭만


"너 '호밀밭을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는다면'이라는 노래 알지? 내가 되고 싶은건…"
"그 노래는 '호밀밭을 걸어오는 누군가와 만난다면'이야"피비가 말했다.
"그건 시야. 로버트 번스가 쓴 거잖아"
"로버트 번스의 시라는 것쯤은 나도 알고 있어" 그렇지만 피비가 옳았다.
"호밀밭을 걸어오는 누군가와 만난다면"이 맞다. 사실 난 그 시를 잘 모르고 있었다.
"내가 '잡는다면'으로 잘못 알고 있었나 봐"나는 말을 이었다.
"그건 그렇다치고, 나는 늘 넓은 호밀밭에서 꼬마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어. 어린애들만 수천 명이 있을 뿐 주위에 어른이라고는 나밖에 없는 거야. 그리고 난 아득한 절벽 옆에 서 있어.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주는 거야. 애들이란 앞뒤 생각 없이 마구 달리는 법이니까 말이야. 그럴 때 어딘가에서 내가 나타나서는 꼬마가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거지. 온종일 그일만 하는 거야. 말하자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나 할까. 바보 같은 얘기라는 건 알고 있어. 하지만 정말 내가 되고 싶은 건 그거야. 바보 같겠지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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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된 이유다. 이 말을 하게 된 배경에는 그의 여동생 피비가 퇴학당해서 집에 돌아온 홀든을 향해 정말로 홀든이 좋아하는 게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나온 대답이다.

이에 홀든은 얼마 전에 길거리를 걷다가 한 아이가 호밀밭에 들어오는 사람을 잡는다면이라는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을 떠올리며 대답한 내용이다. 사실 그 노래는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그도 가사를 제대로 알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금 더 즉흥적이고 오히려 가볍게 임기응변식으로 넘길 만큼 사소하게 여길 수도 있지만, 그가 어린애들의 신발 끈을 묶어주고 수녀에게 10달라를 기부했을 때의 순수함을 생각한다면 오히려 그의 무의식의 발현된 진심에 가까워 보인다.

이 책은 홀든의 입을 빌어 위대한 개츠비를 정말로 좋아한다고 말한 것처럼, 시대적인 배경도 그렇고 위대한 개츠비가 정말로 걸맞은 소설이다.

보수적으로 변하고 사회가 원하는 학벌, 명예, 격식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진짜 사랑을 찾는 낭만을 가진 개츠비처럼 홀든 또한 어른들에게 사회화를 강요받는 피해자가 된 것이다.

실제로 홀든이 피비에게 도달하기까지 만난 수많은 어른은 홀든에게 "정신 차려라", "그러다 나중에 후회한다."고만 말할 뿐 아무도 홀든의 말을 귀담아듣거나 그의 진심 어린 생각을 들어줄 생각은 하지 않았다.

처음에 퇴학을 당하고 F를 준 선생님을 찾아갔을 때도, 연못에 오리들은 호수가 얼면 어디로 가느냐는 질문을 한 택시 기사도, 호텔 엘리베이터 벨 보이도, 모두 홀든에게 자신만의 생각들을 강요하고 무시할 뿐이었다.

그러다가 진정으로 위로받게 된 것은 어른도 아니고 친구도 아닌 바로 그의 여동생인 피비에게서 였다.

훌쩍 떠나버리겠다고 그 자신도 지키지 못할 약속을 내뱉고 떠나왔던 그의 말을 믿고 함께 따라 나서주겠다고 말한 피비의 말에 홀든은 당혹스러움과 함께 그녀의 순수함과 자신의 말을 믿어준 그녀에 대한 고마움이 공존하게 되고 그녀가 즐겁게 동심을 상징하는 회전목마를 타는 것을 지켜보며 자신도 의미를 알 수 없는 눈물을 흘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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