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1. 21. 19:19

할아버지가 꼭 보여주고 싶은 서양명화 101

책의 제목따나 이 책은 구어체로 마치 할아버지가 손자 손녀들을 곁에 앉혀두고 옛 이야기를 전해주는 것처럼 친근하고 구수하게 미술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실제로 서문에는 손녀의 이름을 언급하면서 "지식보다 중요한 것이 상상력"이라는 아인슈타인의 말을 인용하며 교양을 통해서 꿈을 키우라 조언하고 있다.

르네상스 시대부터 현대 추상표현주의, 팝아트까지. 총 101가지의 서양 명화를 소개하고 화가에 대한 설명과 배경들을 총망라하는 것이 큰 특징이다.

특히 책의 표지이기도 한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설명한 대목이 가장 기억에 남는데, 이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를 그린 요하네스 베르메르는 렘브란트와 함께 네덜란드 미술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국보급 화가다.

주로 여성을 주제로 한 일상적인 가정생활의 모습과 고향 델프트의 풍경을 그렸는데, 베르메르도 렘브란트 못지않은 빛의 마술사로 안정된 구도, 섬세한 붓놀림, 빛의 이용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이 그림에서 초점은 어둠 속에서 은은하게 빛나는 진주 귀고리인데, 이 귀고리를 단 2번의 붓 터치로 묘사했다고 한다.

책의 표지까지 남기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스칼렛 요한슨이 주연한 동명의 영화도 있을 정도로 세상에 널리 알려진 작품이지만 베르메르는 대부분의 작품활동을 고향인 델프트에서 한 이유 때문에 전국적으로 명성을 떨치지 못했다. 말년에는 아주 궁핍한 생활을 하며 심지어 슬하에 11명의 자녀들도 있었다. 4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에는 많은 부채까지 남길 정도였다.

후에 후배 화가들의 재조명으로 200년이나 지난 19세기에 비로서 지금의 명성을 얻게 된다.

고갱과 고흐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나 입에 숟가락을 입에 물고 꿈을 꾸다가 입에서 숟가락이 떨어지면 그 소리에 깨어나서 바로 꿈의 장면을 잊어버리기 전에 재빨리 그리던 달리의 기행이나.

화가의 뒷 이야기들은 그림만큼이나 흥미롭고 그림의 풍미를 좀더 입체적으로 느낄 수 있게 만들어준다.

과연 예술이 교양의 잣대가 될 수 있을까?


예술은 흔히 있는 사람들의 돈놀이의 대상이나 세금증여 및 탈세의 용도로 사용된다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다. 그도 그럴 것이 예술 작품은 원가나 정가가 정해져 있지 않고 그야말로 부르는게 값이기 때문이다. 모 방송 프로그램에서 개그맨이 아무렇게나 그린 그림을 보고 평론가가 쉽사리 가격을 평가하지 못하는 모습도 이에 연장지어 생각해볼 수 있다.

가치의 판단이라는 것은 저마다의 기준과 평가 요소들이 있기 때문에 누구에게는 휴지조각처럼 느껴지는 것이 누구에게는 바다와도 같은 깊이를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위 작품은 루치오 폰타나의 공간개념이라는 작품이다. 그렇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아는 전통적 원근법으로 만든 공간에서 벗어나 그저 캔버스를 칼로 베어낸 자국을 만들어 새로운 공간을 창조해낸 작품이다. 일반적인 시각에서 보면 "대체 이게 왜 예술작품이야?"라는 생각을 절로 불러 일으킬 만큼이나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이 작품은 시각을 달리하게 만든다는 관점에서 시대를 뒤흔들었다. 2차원적인 평면에 머물던 작품들과 세상의 관념을 3차원적인 색과 소리 그리고 동작이 어떻게 4차원적 공간 속에 융화해야 하는지를 제시한 것이다.

그가 창출한 공간이란 개념은 저마다 각자의 확장된 개념으로 뿌리를 잡고 나아가게 된다.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다.

"이 그림은 망친 거야. 붉은 물감이 캔버스에 흘렀거든. 처음에는 화를 냈는데 점차 그 얼룩이 맘에 들더군. 그 공사장이 진짜가 아닐 뿐 아니라 눈속임용으로 그려 넣은 낡은 무대 장치 같았고, 붉은 물감 자국은 찢어진 틈같았기 때문이지. 그래서 나는 이 틈을 확대해서 그 뒤에서 볼 수 있을 것을 상상하는 놀이를 시작했어. 그런 이유로 내가 그린 첫 연작을 무대장치라 불렀던 거야. 물론 아무도 내 그림을 보진 못하게 했지. 보았다면 나는 퇴학 당했을 거야. 앞은 완벽한 사실주의 세계였고, 그 뒤에는 무대장치의 찢어진 캔버스 뒤편처럼 뭔가 다른 것, 신비롭고 추상적인 것이 보였지."
그녀는 말을 멈추더니 다시 덧붙였다.
"앞은 파악할 수 있는 거짓이고, 뒤는 이해할 수 없는 진리였지."

예술이라는 것은 어쩌면 보자마자 감탄을 자아내며 화려하고 미학적인 미려함을 갖추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좀더 본질적인 가치에 대해서 알고 인문학적으로 작품에 대해서 접근하려 한다면 단순히 가치 평가를 넘어서 정말로 작품이 주는 가치에 대해서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등장인물 사비나가 한 말처럼, 작품을 입체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쇼펜하우어에 의하면 예술 작품은 인간들 중에서도 가장 객관적으로 사유하는 천재의 산물이고, 그 천재의 활동은 전적으로 지성 속에 집중되어 나타나며, 창작된 작품 속에서 세계를 순수하게 객관적으로 포착한다.

예술 작품이 인문학인 이유도 이에 있다. 작품은 시대를 가장 객관적으로 반영하므로 예술 작품을 감상한다는 것은 그 시대의 에센스를 보고 읽는 것과 같은 행위인 것이다.

그림을 물론 눈으로 즐기고 가슴으로 느끼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중요한 것이 그림 안에 들어있는 인문학을 '읽는' 것 또한 예술의 한 부분이라 할 수 있겠다.

이는 물론 당연히 어떤 악의적인 목적을 가지고 예술품의 가치를 메겨 우리가 이해하지 못한다는 이유를 앞세워 이를 악용하고 이용한다고 하더라도 이에 단순히 모든 작품들이 다 같을 것이라 일반화하는 것 또한 경계해야하는 이유이다.

때로는 수요와 공급에 의해서 결정되지 않는 것들도 존재한다. 이 예술 작품을 소유한다는 것은 단순히 전시해두고 인테리어를 위한다는 것 이상으로 그 시대의 시대상과 작품에 담겨진 이야기를 소유한다는 점도 그 가치에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작품들에 담겨진 숨겨진 이야기들을 마치 손주들에게 해주는 할아버지의 입을 빌어 친절하게 담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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