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3. 1. 23:55

자유인 조르바

책을 구입한지 오래가 지나서 왜 이 책을 사게 되었는지 더이상 기억이 나지 않을 때가 있다. 나에게는 이 그리스인 조르바의 경우가 딱 그런 경우였다. 어렴풋이 생각하기로는 명사들의 추천이나 여러 경로를 통해서 많이 접하게 되어서 구입하게 되었던 케이스였던 것 같다. 한동안 사놓고도 책의 두께와 여러 물리적인 시간들의 압박들 속에 쉽사리 손에 가지 않다가 최근들어 연휴들과 공백이 많이 생기게 되면서 책을 집어들었다.
영미문학이나 국내문학은 많이 접해봤지만 그리스 문학은 많이 접해본 적이 없어서 일단은 가장 처음으로 이국적인 느낌이 들었다. ‘죄와 벌’을 처음 접했을 때도 이런 느낌이었다. 등장인물들이 쉽게 머리 속에 들어오지 않아서 많은 고생을 했다.
그런 불편함을 다음 번에는 겪지 않고자 소설을 읽을 때면 등장인물들의 이름을 가장 먼저 메모지에 적어놓고 독서를 시작한다. 그런데 이 소설의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름이 언급되지 않고 조르바의 입에서 ‘두목’ 혹은 지칭 대명사 정도로 드러남에 그치고 있다.
이 소설은 1인칭 관찰자 시점인데, ‘나’를 통해서 그리스인 조르바에 대해서 서술하고 있다. 마치 셜록 홈즈나 데미안의 왓슨과 싱클레어처럼 좀더 인물에 대해 객관성을 부여하면서 좀더 사실적으로 느껴지도록 만드는 방법이다.-이것이 실화를 기반으로 한 소설이라는 것은 후에 알게 된 사실이다.-여기서 '나'는 작가인 카잔차키스를 말하는 것이다. 어쩌면 계속해서 ‘나’의 언급을 의도적으로 회피한 것도 좀더 소설적이고 신화적으로 느껴지도록 하는 하나의 장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히 그 장치적인 위력의 대단함은 지금의 니코스 카잔차키스 공항의 지명이나 그리스의 관광지로도 유명한 조르바 생가로 이를 대신하고 있는데, 그만큼 이 소설의 파급력이나 조르바에 대한 인물의 카리스마가 끼친 영향력이 어마무시하다는 뜻이리라.

첫만남은 노사관계


조르바에 대해서 소개하기 전에 카잔차키스가 조르바를 만나기 까지의 과정을 살짝 언급할 필요가 있다. 처음 시작은 ‘나’가 친한 친구를 잃은 소식을 듣는 것으로 음울한 분위기를 띄우며 시작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사업을 진행에 먹고 살아야하는 입장이었으므로 노동자를 구하다가 유쾌한하고 거침없는 성격의 조르바를 만나게 된다. 그는 나이든 노인이며 ‘나’는 젊은 청년임에도 불구하고 꼬박꼬박 그를 ‘두목’이라고 부르며 전혀 하대하지 않고 오히려 허물없이 대한다.
그렇게 그들은 같이 크레타 섬에 가서 함께 갱도를 지으며 일하면서 그곳에서 함께 하는 동안에 일을 기록한 수기에 가까운 소설이라고 볼 수 있다.

카프카와 헤밍웨이의 만남


순간 나는 목소리를 분명하게 들었다. 붓다의 목소리였다. 나는 도망치려는 듯이 빠른 걸음으로 물가를 걷기 시작했다. 얼마 전인가부터 나는 한밤중에 혼자 있을 때, 주위가 침묵에 휩싸이면 그의 목소리를 들어 왔다. 처음에는 막가처럼 슬프고 하소연하는 듯한 목소리였는데, 나중에는 노기를 띠며 꾸짖는, 단호하게 명령하는듯한 소리로 변했다. 그 소리는 자궁을 떠날 때가 된 아이처럼 내 가슴 내부를 걷어차고는 했다. - 97p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그들의 만남을 머리속에서 재구성한 이미지는 다음과 같았다. 카프카와 헤밍웨이의 만남. 붓다의 가르침을 가슴 깊이 되뇌이며 책을 끌어안고 내적 갈등과 금욕을 자아 실현을 목표한 ‘나’와 본능이 시키는 데로, Follow your Heart 말 그대로 마음가는 데로 행동한 조르바는 말 그대로 극과 극의 만남이었다.
결단하는 것에 있어서 거리낌이 없고 항상 후회하지 않을만큼만 행동한다. 자신만의 철학이 확고해 그 누가 뭐라고 말해도 결코 흔들리는 법이 없다. 마치 헤밍웨이의 결단있고 막힘없는 문장들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가 가진 하드보일드한 성격 역시 오버랩핑하게 만드는 요소 중에 하나다.
몽상가적인 기질이 있었던 카프카는 사실 생 중에 이루어낸 것은 거의 없고 사후에 그의 친구에 의해서 발표된 소설이나 발명품들이 재각광을 받았다. 공사장에서 사용하는 안전모가 사실 카프카가 발명한 것이라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 중에서도 가장 의외의 부분일 것이다. 그의 내적 성향이나 비의식 세계가 가득한 그의 작품들이 그를 대변해주고 있다.
그래야만 하는 걸 알면서도 그러지 말아야 한다는 세상의 굴레에 둘러 쌓여서 그의 마음을 포기하고 마는 ‘나’와 큰 실패에도 호탕하게 웃으며 자유롭게 떠돌아다니는 조르바. 그래서 그들의 만남이 마치 카프카와 헤밍웨이의 만남처럼 느껴진 이유와 같다.

조르바와 함께하는 동안의 시간은 다른 맛이 났다. 시간은 더 이상 외부 사건의 산술적인 연속도, 내부의 풀지 못할 철학적인 문제도 아니었다. 나는 내 손가락 사이로 부드럽게 빠져나가는 모래를 감촉할 수 있었다. - 231p

 

자유를 갈망하지만 표출할 수는 없었던 시대


영화 위대한 개츠비에서

글을 읽다보면 참으로 시대 착오적인 이야기들이 줄을 잇는다. 사실 조르바 역시 이 시대의 흐름을 무시할 수는 없는 법이다. 성격은 마초적이다라고 포장하기는 하지만 그가 가진 철학 역시 그 시대의 기준인 올드한 것이므로 여성관이나 무조건 감정적이어야 하는 일이 지금 시대의 거울로 비춰보면 그리 옳고 좋아보일 수만은 없는 법이다.
다만 잠시 우리 시대의 거울은 내려두고 그때의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과부가 남편이 죽은게 과부가 잡아먹은 것이라며 몰아가고 결국 재판없이 즉결 심판으로 마을 사람들이 몰매로 과부를 죽이는 시대. 종교는 타락했지만 금욕을 주장하고 정결과 순수함을 바라던 모순적인 시대.
조르바는 이에 분노했다. 과부를 죽이려던 마을 사람들과 맞서 싸웠고, 타락한 종교를 향해 파계승과 짜서 부지를 불태워버렸다. 시대를 향해 맞서 싸웠고 곧 그것이 조르바의 자유였다.
반면에 ‘나’는 속으로는 그렇게 해야한다는 것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과부를 향해 나서지 못하고 계략을 짜는 조르바를 향해 오히려 말리기만 할 뿐이었다.
마지막 즈음에 그들의 사업이 끝나고 갱도 개통식이 열렸을 때, 지금까지 했던 모든 일들이 실패로 돌아갔음을 깨달았을 때. 그들은 함께 춤을 췄다. 실패가 주는 자유가 그들을 해방시켰다.
하지만 ‘나’는 조르바와 헤어지기를 결심했다.
역시 그의 마음 속에는 조르바와 함께 있고 싶은 마음이지만 행동은 달랐던 것이다. 조르바를 지켜보면서 그가 느낀 감정은 무엇이었을까. 낭패감? 좌절감? 그처럼 변하고 싶다는 사명감? 그가 조르바에 대한 글을 쓰기로 결심했을 때. 그는 그래야만 한다는 것을 강하게 느꼈을 것이다. 처음으로 그가 가장 가슴에서 느끼는 행동을 행한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위대한 개츠비에서 개츠비는 우리 기준에서만 바라본다면 악인이다. 불법적인 일을 통해 돈을 벌었으며 오직 한 명의 여자를 위해 매일 밤낮 파티를 벌이고 심지어 그 여자는 이미 결혼한 유부녀이다. 하지만 모두가 돈과 부를 쫓는 미국 Golden era에서 돈이 아닌 사랑과 순수함만을 쫓았던 그는 분명히 남들과는 다른 것을 추구했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조르바 역시 그 시대의 위대한 조르바였음이 분명하다. 자유를 쫓았던 그리스인 조르바.

 “두목, 어디 한번 들어봅시다.”
 그가 말문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따사로운 따사로운 밤공기 속에서 그윽하면서도 진지했다.
 “이 모든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요? 누가 이들을 창조했을까요? 왜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여기에서 조르바의 목소리는 분노와 공포로 떨렸다.”...왜 사람들은 죽는 것일까요?”
 “모르갰어요. 조르바.” 내가 대답했다. 부끄러웠다. 가장 단순한 질문, 가장 기초적인 질문을 받고도 답을 내놓지 못한 것 같아서였다.
 “모르신다!” 조르바는 놀라움으로 눈을 동그렇게 뜨고 소리쳤다. 내가 춤출 줄 모른다고 고백했을 때 와 표정이 똑같았다. 그는 또 한동안 입을 다물고 있다가 이렇개 소리쳤다.
 “아니, 두목, 당신이 읽은 그 모든 빌어먹을 책들...... 그것들은 대채 무슨 소용이 있어요? 그건 왜 읽어요? 책이 그런 걸 알려주지 않으면 도대체 뭘 알려주는데요?”
“인간의 당혹감에 대해 알려 주죠. 당신이 나한테 던진 바로 그런 질문에 아무 대답도 할 수 없는 인간의 당혹감 말이에요.” 391p

 

  도서

별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