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나는 왜 책을 읽는가? 그리고 어떻게 읽어야하는가
    log 2026. 6. 6. 17:53

    1. "왜 읽는가"라는 질문이 생긴 순간
    2. 책은 정제된 정보다 — 인터넷과 책의 결정적 차이
    3. 책은 뇌를 능동적으로 훈련시킨다 — 신경과학이 말하는 독서의 효과
    4. 책은 다른 삶을 간접 경험하게 한다 — 문학이 주는 것
    5. 고전은 변하지 않는 정수다 — AI 시대에도 대체되지 않는 것
    6. 책은 나만의 언어와 주관을 만들어준다 — 표현력과 사유의 연결
    7. 어떻게 읽는가가 결과를 바꾼다 — 능동적 독서의 가치
    8. 소유가 아닌 사유를 위해

    "왜 읽는가"라는 질문이 생긴 순간

    언제부터인가 유튜브에 책을 요약해주는 채널들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15분짜리 영상 하나로 300페이지 분량의 책을 끝낼 수 있다고 한다. 심지어 방송에서도 그런 수요를 포착했는지, 고전 문학과 인문학 책을 요약하고 해설해주는 교양 예능 프로그램까지 생겨났다.

    이게 단순한 취향의 변화일까.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한국 성인 독서율은 1994년 86.8%에서 2021년 40.7%로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더 눈에 띄는 건 그다음이다. 20대의 13.5%, 10대의 19.6%가 유튜브나 영상 콘텐츠를 독서의 한 형태로 인식한다고 답했다. 책을 읽지 않는 게 아니라, 영상을 보는 것으로 읽었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 사실이 묘하게 마음에 걸렸다. 틀렸다고 단정 짓기는 어렵지만, 무언가 중요한 것이 조용히 사라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런 콘텐츠를 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직접 책을 읽는 걸까. 요약본으로도 내용은 알 수 있는데. 줄거리를 아는 것과 책을 읽는 것은 같은 일인가.

    그 질문이 생긴 순간, 나는 내가 책을 읽는 이유를 처음으로 진지하게 생각해봤다.


    1. 책은 정제된 정보다

    인터넷에는 정보가 넘친다. 검색 하나로 수천 개의 글이 쏟아진다. 그런데 이상하게 읽고 나면 머릿속에 남는 게 없다. 정보의 양과 이해의 깊이가 비례하지 않는다는 느낌.

    https://www.youtube.com/watch?v=ehIdjNaJyIw

    이유가 있다. 이동진 평론가는 인터넷의 정보는 아직 도정되지 않은 쌀과 같고, 책은 밥상에 올라온 쌀밥과 같다고 말한다. 책은 편집자와 저자를 거쳐 오랜 시간 걸러진 정보다. 독자가 직접 진위를 가릴 필요 없이, 이미 어느 정도의 신뢰가 보장된 형태로 도착한다. 인터넷 정보가 90%의 사실과 10%의 오류를 무작위로 섞어 제공한다면, 책은 그 비율이 훨씬 뒤집혀 있다.

    요약 콘텐츠는 어떨까. 내용은 전달된다. 그러나 줄거리는 전체를 설명하지 않는다. 저자가 하나의 문장을 고르고, 다음 문장으로 이어지는 맥락, 그 사이에 쌓인 밀도 — 그런 것들은 요약본에 남지 않는다. 결국 요약본으로 책을 '소비'할 수는 있어도, 책을 '경험'하기는 어렵다.


    2. 책은 뇌를 능동적으로 훈련시킨다

    읽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능동적인 행위다.

    글을 읽을 때 우리는 눈으로 텍스트를 쫓고, 의미를 추론하고, 앞뒤 문맥을 연결하며 스스로 결론을 끌어내야 한다. 영상은 속도와 방향을 제공자가 결정하지만, 책은 독자가 직접 페이스를 정하고 멈추고 되돌아가며 읽는다. 그 과정 자체가 사고력 훈련이다.

    뇌과학적으로도 흥미롭다. 독서 중에는 시각 피질, 언어 영역(베르니케·브로카), 그리고 계획·판단·충동 조절에 관여하는 전두엽이 동시에 활성화된다.[1] 특히 전두엽의 전전두피질은 주변의 불필요한 자극을 억제하는 역할을 하는데, 독서가 이 부위를 반복적으로 훈련시킨다. 단순히 내용을 이해하는 것을 넘어, 읽는 행위 자체가 뇌 구조를 바꾼다.

    더 나아가, 어떤 책을 읽느냐도 중요하다. 셰익스피어의 은유적 표현을 읽는 동안 뇌를 관찰해보면, 전두엽이 유독 활발하게 활성화된다.[2] 이유가 있다. 은유란 서로 다른 영역에 있는 것들을 이어붙이는 작업이다. 멀리 떨어진 개념들을 연결할수록 뇌는 더 광범위하게 작동한다. 답을 빨리 주는 책보다 은유가 가득한 책이 뇌에 더 자극이 되는 이유다. 사전은 은유가 0%인 책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문학을 읽는다는 건 정보를 얻는 것을 넘어 뇌 전체를 가동시키는 일이다.

    한 가지 더 주목할 부분이 있다.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는 빠르고 즉각적인 도파민 보상을 제공한다. 스크롤 한 번에 웃음이 나오고, 알림 하나에 기분이 올라간다. 그러나 성숙함이란 지연 보상 — 느리게 오는 보상을 견디는 능력 — 을 기르는 것이다. 책은 그 훈련에 가장 적합한 도구다. 당장 결론이 나오지 않아도 천천히 읽어가며 마지막 페이지에서 무언가를 얻는 경험. 그 과정에서 뇌는 침착함을 관장하는 세로토닌과 이성적 사고를 돕는 아세틸콜린이 활성화된다.[3] 흥분하지 않고 차분하게 텍스트를 따라가는 것 자체가 감정과 충동을 조절하는 훈련인 셈이다.

    스마트폰이 주의를 끊임없이 분산시키는 시대에, 책은 긴 호흡의 집중을 가능하게 하는 거의 유일한 도구다. 나는 한동안 책을 멀리하면서 점점 한 가지 일에 오래 집중하기 어려워지는 자신을 발견했다. 책으로 돌아오면서 그 감각이 천천히 회복되는 걸 느꼈다. 이건 이론이 아니라 경험이다.


    3. 책은 다른 삶을 간접 경험하게 한다

    나는 지금까지 한 번의 삶밖에 살지 못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 말이 실감 나는 순간이 있다.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감정, 내가 한번도 처해본 적 없는 상황 앞에 설 때다.

    책 — 특히 문학 — 은 그 간극을 메워준다. 뇌는 간접 경험과 직접 경험을 신경학적으로 거의 구분하지 못한다.[4] 소설 속 인물의 상실을 따라가면서 실제로 상실을 경험한 사람의 감각 회로가 활성화된다. 그렇게 독서는 경험의 총량을 늘려준다.

    더 실용적으로 말하면, 다양한 삶을 읽다 보면 세상을 이해하는 틀이 풍부해진다. 같은 사건도 어떤 틀로 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게 해석된다.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은 그 틀이 많다. 하나의 현상을 여러 각도에서 볼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5. 고전은 변하지 않는 정수다

    AI 시대가 되면서 정보를 얻는 방법이 달라졌다. 기술 서적이나 실무 관련 책을 사던 습관이 어느 순간 사라졌다. 필요한 정보는 검색과 AI로 더 빠르고 정확하게 얻을 수 있으니까. 그 변화는 자연스러웠고, 솔직히 크게 아쉽지 않았다.
    카프카나 리액트, 플러터 등 이 기술은 10년뒤에도,20년뒤에도 꾸준히 사용될까? 그렇지 않다. 지금만해도 업데이트되고있고 명맥은 유지되고있지만 앵귤러나 뷰는 사용자수도 이전에 비해서 리액트에 비해서 떨어지고 배우려는 사람도 줄어들고있다. 기술은 시대의 맥락과 환경에 의해서 바뀌고 재정의된다.

    그런데 고전은 달랐다. 아무리 기술이 발전해도, 고전이 주는 것은 쉽게 대체되지 않는다. 고전은 시대의 에센스다.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전쟁이 나고, 인터넷이 세상을 바꿨어도 고전은 내내 읽혀왔다. 수백 년을 살아남은 텍스트에는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시간의 검증을 통과한 인간의 본질적인 물음들이 담겨 있다.

    이탈로 칼비노는 말했다. "고전이란 결코 다 말하기를 끝내지 않는 책이다."[5] 스무 살에 읽은 고전과 서른 살에 읽는 고전은 같은 텍스트지만 다른 책처럼 느껴진다. 책은 가만히 있는데, 읽는 사람이 달라져 있기 때문이다. 고전은 정보를 전달하는 책이 아니라, 지금의 나를 비추는 거울에 가깝다. 그리고 다양한 시대와 독자들이 겹겹이 쌓아올린 해석의 층위가, 내가 미처 보지 못한 각도를 보여준다.

    나는 마음이 어수선할 때 고전을 찾는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무언가를 손에 쥐는 느낌. 그 안정감은 정보에서 오는 게 아니라, 오래된 것과 나 사이의 조용한 대화에서 온다.


    6. 책은 나만의 언어와 주관을 만들어준다

    작가는 말을 수집하는 사람이다. 예를 들면 미용실에 가면 미용실의 언어를 다 수집한다. 머리 자를 때 쓰는 보자기, 그걸 커트보라고 한다. 재미있는 말이 나오면 작가들은 바로 수집한다.

    알쓸신잡 프로그램에 나온 소설가 김영하는 작가는 언어를 수집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길을 걷다가, 대화를 나누다가, 어떤 특별한 표현을 발견하면 마음속에 담아두는 사람. 그렇게 모인 언어들이 쌓여 그 사람만의 문체가 된다.

    독자도 마찬가지다. 좋은 책을 읽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좋은 문장을 흡수하게 된다. 문해력은 읽는 것으로 키워지고, 읽기가 쌓이면 쓰기도 달라진다.[6] 내가 쓸 수 있는 말의 범위가 넓어지고, 내가 표현할 수 있는 감정의 결이 세밀해진다.

    더 실용적인 차원도 있다. 세상은 여전히 글로 평가받는다. 논문, 계약서, 기획안, 보고서 — 중요한 것들은 대부분 글의 형태로 존재한다. 한글로 쓰여 있다고 해서 누구나 다 이해하는 게 아니다. 수능 국어가 사실상 언어 처리 속도의 시험이듯, 빠르고 정확하게 글을 이해하는 능력 그 자체가 문해력이다.[7] 독서는 그 능력을 기르는 가장 직접적인 훈련이다.

    나는 글을 쓰고 싶다는 욕구가 있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도 있고, 경험을 기록해두고 싶은 마음도 있다. 그런데 막상 쓰려고 하면 종종 막힌다. 내가 느끼는 것을 정확하게 표현할 단어가 없거나, 문장의 구조가 어색하거나. 그 갈증을 채워주는 것이 결국 독서다. 책을 읽는다는 건, 쓰기 위한 준비이기도 하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나는 요즘 책을 다 읽고 나면 짧게라도 독후감을 쓰려고 한다. 독후감을 쓰는 건 확증 편향과 에코체임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다. 책에 공감했다면, 왜 공감했는지. 동의하지 않았다면, 어디서 생각이 갈렸는지. 그 과정을 글로 남기면서 저자의 시선을 그냥 받아들이지 않고 나의 주관으로 걸러내게 된다. 읽는다는 것은 받아들이는 것만이 아니라, 대화하는 것이기도 하다.


    7. 어떻게 읽는가가 결과를 바꾼다

    같은 책을 읽어도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남는 것이 다르다.

    연필이나 형광펜을 들고 읽는 습관은 단순한 취미가 아니다. 손글씨를 쓰는 것이 기억력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은 노르웨이 연구진들이 밝혀낸 바 있다.[8] 밑줄을 그으며 읽는다는 건 그 문장을 한번 더 처리한다는 뜻이다. 읽고 지나치는 것과, 멈추고 표시하는 것 사이에는 생각보다 큰 차이가 있다.

    나는 책갈피를 사용하지 않는다. 다음번에 이어서 읽을 때, 지난번 읽었던 부분을 되짚으며 다시 시작한다. 몇 줄 되돌아가는 사이 흐름이 돌아오고, 어제의 독서와 오늘의 독서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빠르게 진도를 나가는 것보다, 느리게 몸에 새기는 편이 훨씬 남는 게 많다.

    독서를 통해 집중력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나는 직접 경험했다. 어렸을 때는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다른 생각에 빠져들기 일쑤였다. 그것이 책을 꾸준히 읽으면서 서서히 바뀌었다. 이제는 집중하려고 마음먹으면 집중할 수 있게 됐다. 책이 나를 훈련시킨 것이다.


    소유가 아닌 사유를 위해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온다. 왜 직접 읽는가.

    지식을 소유하고 전달하는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하고 전달하는 일에서 이미 인간을 훨씬 앞섰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AI 분야 스스로가 '학습'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걸 증명해왔다는 점이다. 더 많은 데이터를 학습시키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었고, 그 결과 AI 인프라의 무게중심이 학습에 최적화된 GPU에서 추론에 특화된 TPU와 LPU로 이동하고 있다. 기술 자체가 이미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더 많이 아는 것보다, 아는 것을 어떻게 연결하고 예측하느냐가 중요해지는 시대라는 방향으로.

    그렇다면 책을 읽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처음에 책이 지식을 쌓는 도구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다르게 본다. 책은 추론을 훈련하는 도구다. 저자의 논리를 따라가며 나의 생각과 맞대어보고, 낯선 삶의 맥락에서 패턴을 읽어내고, 서로 다른 영역의 개념을 연결하는 것 — 그 모든 행위가 추론과 예측, 연결의 반복이다. 그 과정에서 쌓이는 것이 있다. 감각이라고 불러도 좋고, 직관이라고 불러도 좋다. 책이 길러주는 그 감각이, 내가 가진 지식을 실제로 써먹을 수 있게 만든다.

    물론 추론도 곧 AI가 더 잘 해낼지 모른다. 그래도 독서를 멈추지 않을 이유가 있다. 지식을 소유하기 위해 읽는 게 아니라, 사유하기 위해 읽는 것이니까. 소유는 대체될 수 있지만, 사유는 그 자체로 삶의 방식이다.

    나는 더 잘 생각하고 싶다. 더 풍부하게 느끼고 싶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고 싶다. 그 세 가지 욕망이 나를 책으로 이끈다.

    책은 느리다. 하지만 그 느림이 핵심이다.


    Summary

    • 지식을 소유하는 시대에서 추론하는 시대로 — 책은 그 추론 감각을 기른다
    • 독서의 이유: 정제된 정보 / 뇌 훈련 / 지연 보상 / 간접 경험 / 고전의 정수 / 언어·주관 축적
    • 어떻게 읽느냐도 중요하다: 능동적 독서(밑줄, 메모, 독후감)가 결과를 바꾼다
    • 결국 더 잘 생각하고, 느끼고, 표현하기 위해 읽는다

    1. YTN 사이언스 투데이, 〈독서로 뇌를 춤추게 하라!〉, https://youtu.be/XEFSi-DszSE?t=265↩︎
    2. 인지심리학 교수 김경일, 〈책 읽어드립니다 — 햄릿편〉↩︎
    3. 가바사와 시온, 《당신의 뇌는 최적화를 원한다》↩︎
    4. 〈성인 53%가 1년에 책 한 권도 안 읽는 시대, 여전히 우리가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 https://www.youtube.com/watch?v=ehIdjNaJyIw↩︎
    5. 이탈로 칼비노, 《왜 고전을 읽는가》(Perché leggere i classici, 1991)↩︎
    6. 신종호 교수(서울대 교육심리학), 〈서울대 교수님이 알려주는 서울대 공부법〉, https://www.youtube.com/watch?v=LGvAjqNKnhc↩︎
    7. 슈카, 〈슈카쌤 리즈 시절 시험비법〉, https://www.youtube.com/watch?v=9k8VcV88Le0↩︎
    8. 조병영 교수(국어교육과), 〈문해력을 키우는 방법〉, https://youtu.be/3AYOEguUb9Y?t=986↩︎

    댓글

Copyright 2023. 은유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