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 3. 17:18

코로나로부터 2020년 살아남기

이글은 회고록의 목적성을 담고 있다. 올해에 겪은 일들과 과정 등을 풀어서 적고, 어떤 것들이 부족했는지, 앞으로는 어떤 것들이 필요한지를 점검하고자 한다.

회고록을 남기게 된 계기


사실 딱히 회고록을 올해도 계속해서 쓰자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작년에도 쓰고나니 올해도 써야겠다는 의무감이 조금 더 들었을 뿐이다.

별다를 일 없이 무탈히 이번 년도를 보냈다면 오히려 이런 회고록도 적을 일이 없었겠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회고록에 적을 내용들이 넘쳐났다.

그런 사건들을 회고함과 더불어 과연 작년에 다짐한 것들은 얼마나 이루어냈는지 되돌아보고 점검하며 반성하는 시간 또한 가져보려고 한다.

지난 회고록은 아래 링크를 참고하면 된다.

 

고졸 개발자로 2019년 살아남기

이글은 회고록의 목적성을 담고 있다. 올해에 겪은 일들과 과정들을 풀어서 적고, 어떤 것들이 부족했는지 앞으로는 어떤 것들이 필요한지를 점검하고자 한다. 회고록을 남기게 된 계기 https://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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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


작년 이맘 때쯤 중국의 우한에서 소식들이 멀리서 들려올 때쯤 이렇게까지 모든 생활이 뒤바뀌게 될줄은 아무것도 예상하지 못했다.

심지어 태풍이 지나는 경로 바로 한 가운데 내가 자리하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지난 후기에도 남겼지만 재작년에 나는 블록체인 거래소에 취직을 했다. 불합리하고 마음에 안드는 점도 있었지만 배우는 것이 많다고 느껴서 그래도 최소한 몇년동안은 버티며 일해보자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나만의 생각이었고 2020년 3월에서 4월, 한창 코로나로 경제 직격탄이 오던 그 시기에 코인의 사정도 안좋아지면서 회사의 재정도 나빠지고 회사에 소속된 트레이더들이 까먹는 돈도 많아지면서 개발팀들은 모두 권고 사직으로 공중분해 되었다.

물론 어른들의 뒷사정이 더 존재하긴 했지만 어찌되었든 시발점은 코로나였음을 부정하긴 힘들다.

저 104만 명 중에 나도 포함이 될줄이야. 심지어 6개월을 다 채우지 못해서 실업급여도 받지 못했다. 그때 당시 기억났던 것은 직장 동료가 실업급여를 받으려고 노동청에 전화를 하려고 했는데 그때 하도 이런 실직자들이 많아서 전화가 항상 불통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다시 취업


사실 갑자기 실직한 거에 자체에 대한 감정은 크게 없었다. 굳이 무언가를 정의한다면, 오히려 무덤덤함에 가까웠다. 뭐 솔직히 다닌 개월 수도 얼마 안됐을 뿐더러 애사심을 가지고 정말 무언가를 해보겠다는 느낌을 가지고 회사를 다닌 것이 아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저 회사의 동료들이나 일을 배우는 것에 있어서만 만족하고 있었고 그 이외에 다른 모든 것들은 정말 이 회사가 어떻게 굴러가는지 의구심이 들정도로 정말 언제 망해도 이상하지 않은 회사라고 평소에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은연 중에 마음에 준비를 하고 있었는지도)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회사 중간에 면접 제안이 왔던 곳에서 더 좋은 연봉의 제안을 받고도 동료들과의 정이나 사수가 면담까지 하며 붙잡으면서 그냥 없던 일로 하고 안갔던 적이 있었는데, 물론 결과론적인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이렇게 될 거 알았으면 그냥 갈껄(?)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뭐 그래도 지금도 연락하고 지낼 정도로 그때 회사의 동료들과는 친하게 지내고 있으니 아예 소득이 없는 것도 아니라고는 할 수 있다. 좋은 사람을 얻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값어치를 한 것 같다ㅡ고 치고 넘어가고 싶다.

그때 당시 친구들이나 동료들에게 했던 말이 있었는데 회사가 망한 것 자체는 크게 감흥이 없었으나 회사가 먼저 나한테 통보를 하니까 뭔가 좋아 하지도 않는 사람한테 고백도 안했는데 차인 기분이 든다고 그 당시의 기분을 비유적으로 말했던 거 같다.

아니 갑자기?

크게 감흥이 없었던 이유 중에 또 한 가지는 여기보다는 더 좋은 회사에 잘 갈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렇게 마음에 드는 회사는 아니었지만 거의 매일 같이 9시에 출근에서 9시에 퇴근할 정도로 열심히 일한 곳이기도 하고 많이 배운 곳이기도 하다. 주말에도 일하고 공부하고 짧은 기간이라면 짧은 기간이지만 쉼없이 달려온 기간이기도 하다. 내가 학원에서 배운 것 그 이상을 배우고 실전에서 적용해볼 수 있었다. 특히 몽고디비나 자바스크립트에 친숙하게 만들어줬다.

확실히 개발자로서 성장한 느낌도 있었고 이런 경험도 어디서 못가질 나만의 독특한 경험이 되겠지, 라고 생각하며 첫달은 조금씩 쉬면서 공부를 병행하고 이제 둘째달 부터 서서히 모아놓은 돈이 사라지기 시작하면서 발등에 불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이제 적극적으로 면접도 보러 다니고 여기저기 지원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그때 처음으로 전화 인터뷰를 제안했던 곳이 지금도 너무 감사한게. 일단 별 기대안하고 넣은 여러 곳 중에 하나기도 했고 그렇기 때문에 준비가 많이 미흡했음에도 불구하고 1차에 합격하고 전화 인터뷰까지 갔던 점이 감사했고 그때 질문들이 진짜 지금 생각해보면 하나 어려운게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때 당시 준비도 하나도 안했던 나에게 정말 어버버 거리면서 생각치도 못한 질문에 답변도 제대로 못했던 기억이 난다.

그로 인해서 당연히 불합격 했고 그걸 신호탄으로 제대로 자만심을 덜어내고 처음으로 돌아가 면접에 필요한 기초들을 공부하기 시작했었다. 내 병든 정신을 일깨워준 것에 대해ㅡ의도하진 않았겠지만ㅡ감사한 마음이다.

우선은 면접이라는 상황에 익숙해져야 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대면 면접은 전부다 참여했다. 몇 곳은 실제로 합격하기도 했지만 뭔가 서늘할 정도로 이상한 곳이었기에 고사한 곳도 있었다.

면접때도 석연찮은 구석이 있었는데 바로 다음날 합격했다고 출근하라고 그러고, 연봉에 대한 이야기 역시 일체 없고 어떤 일을 하는지도 명확하게 알려주는 것도 없는 그런 곳이었다.

그렇게 면접들을 여러 번 보면서 회사에 대한 감각이나 면접에 대한 감각들을 익히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백엔드에서 데이터 엔지니어로


그래서 결국 마음을 다잡고 취업전선에 나간지 약 4개월만에 다시 취직에 성공했다. 연봉도 올려서 갔으니 사실상 경력 약 6개월만에 연봉상승이 생긴 셈이다. 여러가지로 회사가 망한게 독보다는 득이 된 느낌이다.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는 빅데이터와 머신 러닝을 기반으로 자체 솔루션을 제작하는 회사이다.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들과 협업할 수 있다는 것이 다른 개발직군과는 조금 차별화 될 수 있는 부분인 것 같다.

또 다른 점이라면 이전 거래소 같은 경우는 트레이더들과 협업할 일이 있었는데 이번 회사에서는 컨설턴트들과 협업할 기회가 생겼다. 정량, 비정량 데이터를 두고 어떻게 분석하고 해석하는지를 눈여겨보면 배울 것이 많아 보인다.

나는 구직할 때도 그렇고 취직할 때도 백엔드 개발자를 목표로 자리를 알아보고 있었다. 포트폴리오나 관심 스택이 두루두루 걸쳐있기 때문에 그 경계를 딱히 나누지는 않았다. 다만 조금이나마 자신있는 것이 백엔드였고 백엔드 분야만큼은 다른 것들에 있어서 역량을 가장 키워보고 싶은 욕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지금 직장에 면접을 보게되고 들어오게 됐는데 우선은 내가 전에 해봤던 크롤링 업무를 맡아서 하기 시작했다.

크롤링도 이전에 해본적이 있어서 어려움없이 실무에 적용은 가능했지만 크롤링한 데이터를 전처리하는 과정들이 그렇게 순탄하다고만은 느껴지지 않았다.

일련의 과정들이 일단락 되자 CTO님께서 나에게 데이터 엔지니어 직군을 추천해주셨다. 회사의 입장에서는 지금까지 하던 업무를 살리면서 공백의 자리를 채워줬으면 하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물론 선택의 권한은 나에게 주도록 배려해 주었다. 꾸준히 어떤 것을 하고 싶은지도 물어봐주시고. 내 입장에서는 데이터 엔지니어라는 직종이 생소하기도 하면서 아직까지 한번도 안해본 것이기 때문에 호기심 반 걱정 반이었다.

아직 백엔드에 있어서도 모르는게 넘치는데 아직 여기서의 경력도 확실하지 않은 상태에서 데이터 엔지니어라는 미지의 영역에 발을 딛는다는 것이 도전이 아니라 만용을 부리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뭐 지금 결과적으로 보면 이미 데이터 엔지니어라는 영역의 출발선에 놓였지만 ETL 프로세스를 짜고 파이프라인을 연결하고 BI 시각화툴, 데이터 레이크를 구축하는 일들이 전부 재밌고 설레는 일들이었지만 하면 할수록 부족한 레퍼런스들과 사수없이 혼자서 모든 것들을 하려니까 이게 대체 맞는 길로 정확하게 하고 있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점들이 생겨난다.

그래서 올해에는 사수도 생겨서 좀더 정석적이고 체계적으로 데이터를 핸들링해보고 싶은 바람이 있다.

데이터 엔지니어로 결정하고 전향(이라고 하기엔 백엔드 경력이 너무 보잘 것 없긴 하지만)하게 된 계기는 우선 우리 나라에서 프론트나 백엔드를 가지고 하는 곳은 많지만 데이터를 가지고 일하는 곳은 많지 않기 때문에 여기서만 배울 수 있는 것들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데이터 사이언스들과 협업을 하는 일도 데이터를 다루는 일도 나만의 장점으로 만들면 충분히 경쟁력이 생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화위복


지금 들어온 곳은 너무 마음에 든다. 사소한 것들일 수도 있지만 오후 1시까지 자율출퇴근제에 갖고 싶던 맥북 프로 16인치를 장비로 제공해주며 밥값도 제대로 지원해준다.(이전 회사는 밥값 조차 내돈으로 사먹어야했다.)전에 비하면 선녀나 다름없다.

특히 나는 이만하면 많이 알고있는 편이라고 생각했던 자만한 내 자신을 일깨워줄 수 있는 환경이 너무 좋았다. 누군가 내게 말했다. 스타트업 최고의 복지는 최고의 동료라고. 그 말대로 지금 회사의 동료는 내게 너무 마음에 들었다. 울타리 안에서 아무리 내가 최고라고 울부짖어봐야 자기 위로밖에 되지 못한다. 하지만 나를 일깨워주고 같이 성장하는 동료들이 있고 레퍼런스나 길잡이가 되어줄 수 있는 CTO도 있어서 회사에서 일하고 기술을 익히는게 즐겁다.

올 한 해를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위기를 기회로 만든 한 해가 아닐까싶다.

위기는 그대로 위기로


올해에 위기를 극복한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작년에 한국사 시험과 토익을 보자고 다짐했는데 애초에 응시조차 하지 못했다.

코로나로 인해서 나처럼 실직자들도 늘고 덩달아 취업의 문도 좁아지면서 그러면 남는 시간 동안 공부하면서 스펙을 쌓자고 생각한 인원들이 늘어남에 따라 응시자는 대폭 늘고 코로나로 인해서 방역을 위해 시험장 수는 대폭 줄었기 때문이다.

시험에 응시하기 위해서는 거의 티케팅 하듯이 서버시간을 틀어놓고 바로 접수하거나 자기 지역 이외에 지역으로 시험보러 투어를 나가야만 했다.

흡사 옛날 한양에 과거 시험치러 일주일 전부터 집을 나서던 지방 선비를 보는 듯 했다.

어떻게보면 티케팅하듯이 응모하고 다른 지역으로 응시하러 가면 되는 일 아니냐고 핑계에 불과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나름의 항변을 하자면 굳이 그렇게까지 에너지를 들여서 따야할 필요성이나 우선순위를 두고 있지 않았다. 게다가 사회적 거리두기가 만연한 가운데 굳이 나가서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상황이 오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는 뒤로 미뤄두고 편하게 응시할 수 있을 때가 되면 그때 다시 도전하리라 마음 먹었다. 이미 사둔 책들은 조금 아깝기는 하지만...

작년 목표 점검


작년에 대략적으로 설정해두었던 목표들은 다음과 같다.

  1. 리액트
  2. 스위프트
  3. 알고리즘
  4. 어플리케이션 토이 프로젝트
  5. 3대 250 넘기기
  6. 책 30권 읽고 리뷰
  7. 한국사 1급
  8. 토익 900점

사실 따지고보면 여기서 이루어낸 것들은 하나도 없다. 리액트와 알고리즘은 공부를 하긴 했지만 과연 공부를 했다고 납득할만한 수준으로 완독한게 없었다. 스위프트는 물론 손도 못댔고 운동도 거리두기의 단계가 격상함에 따라 헬스장이 문을 닫는 바람에 근손실이 꾸준히 축적되고 있는 상황이다.

책 또한 7권으로 작년에 비하면 미미하게 늘어난 수준이기는 하지만 역시나 취업공부 때문에 잠시 우선순위를 뒤로 미루어뒀기 때문이라고는 쳐도 목표로한 30권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한국사와 토익은 조금 전에 남긴 항변으로 대신한다면 사실 결국 따지고보면 작년에는 이루어낸 게 없는 셈이다.

올해는 코로나 국면도 감안해서 목표를 현실성 있게 재설정해서 목표는 목표를 다 이루어내는 것을 목표로 잡아야겠다.

작년에는 개발 일을 시작한지 얼마 안되서 패기가 넘쳤고 메타인지적으로 공부의 양을 측정하지 못했고 여러 변수들이 작년에는 가득했으니 넘어가지만 정말로 올해 목표는 현실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추려서 반드시 올해안에 결실을 맺도록 노력해야겠다.

앞으로의 방향성에 대해


그래서 그 현실적인 방향성은 무엇인가? 생각해봤을 때 내가 무엇을 하고싶은가와 맞닿아 있다. 일단 내가 하고있는 일에 대해서 전문성을 갖추고 싶다. 데이터 엔지니어에 대한 숙련도를 높히고 싶다. 그리고 여전히 프론트의 기술을 익히고 싶다. 더 나아간다면 모바일 앱의 기술도 가지고 싶지만 이미 물리적으로 그것은 욕심이라는 것을 이제는 잘 안다. 따라서

  1. 데이터 엔지니어 숙련도 올리기(하둡 구조나 카프카에 대해서 공부하고 익히기)
  2. 리액트 공부하기
  3. 그래도 시간이 남는다면 리액트 네이티브 공부하기

1번과 2번은 꼭 해야하는 권장사항이고 3번은 추가사항인 셈이다. 다음은 부가적인 목표다.

  1. 블로그 방문자 수 10만명 돌파
  2. 책 10권 읽고 리뷰하기

30권이라는 백수때나 가능한 터무니없는 숫자를 대폭 줄이고 현실성있는 숫자와 블로그를 꾸준히 업로드해서 방문자 수 10만명을 넘겨봐야겠다. 19년도 9월부터 시작한 블로그가 이제 거의 5만명이 가깝다는 것은 조금만 분발하면 10만명도 무리한 숫자는 아닌 것 같다.

회사에서도 독서 동아리를 만들어 좀더 책과 가까운 분위기를 만들었는데 이점을 활용해서 더욱 책을 의식적으로 많이 읽으려는 노력을 기울여야겠다.

그리고 한국사와 토익은 역시나 시국이 좀 진정되면 계속해서 이어나가는 걸로 추가사항에 넣어놓자.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1. 데이터 엔지니어 숙련도 올리기
  2. 리액트 공부하기
  3. 리액트 네이티브 공부하기
  4. 블로그 방문자 수 10만명 돌파
  5. 책 10권 읽고 리뷰하기
  6. 한국사 1급
  7. 토익 900점

이 글을 쓴 목적은 다짐과 함께 여러분들이 꾸준히 피드백과 채찍을 아끼지 말아달라는 부탁이 담겨있다. 이 약속을 지킬지 안 지킬지 블로그를 지켜보며 많은 관심과 감시 부탁드린다. 그리고 올해는 또 무엇으로 부터 살아남을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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